오델로

2024.10.03 제 6회 오델로 왕중왕전 후기

now-cow 2024. 10. 5. 02:37

오델로에 관심 있어하는 사람이 좀 늘어나서 이번 기회에 대회가 크게 열렸습니다.

맨날 기원에 빌붙어서 하다가 이번에는 대회장도 따로 빌리고 아마추어 대회도 열고 상금도 걸고 트로피도 만들고 등등.. 

체스만큼 커지면 좋겠네요

 

같은 날에 마라톤이 열려서 교통 통제가 걸리는 바람에 원래 버스가 서야 하는 정류장에 안서고 회차하는걸 모르고 있다가 지각할뻔 했습니다. 급하게 택시 불러서 대회 시작 4분 전에 간신히 도착했네요ㅋㅋ

 

대회 전에 제가 준비한 오프닝은 brightwell 입니다. 변화도를 연구해온건 아니고 그냥 이걸로 두니까 사람들이 적당히 최선수로 받아서 미들게임이 비슷비슷하게 가길래 흑으로는 이것만 두기로 마음먹고 왔습니다.

 

그리고 얼마전 체스 올림픽 중계를 보니까 타임 컨트롤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또한번 느낄 수 있어서 이번 대회에서는 초중반에 시간을 아껴서 상대방에게 타임 트러블을 거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이 전략은 뒤에 나오지만 매우 큰 효과를 볼 수 있었습니다.

 

다른 기사분들이 모르게 오델로 퀘스트에서 만났을 때는 블러핑 용으로 맨날 스네이크만 주구장창 뒀습니다. ㅋㅋㅋㅋ

brightwell 오프닝


제가 둔 대국들을 복기하고자 합니다.

 

1라운드 vs 양찬주 기사님

오늘 처음 뵙는 분이셨고 첫판인 만큼 가볍게 두기로 마음먹었습니다. brightwell은 아껴뒀다 쓰려고 무난하게 받았고 백이 노쿵으로 들어갔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노쿵 진행입니다. 근데 다음 수에서 바로 틀려버린

 

 

흑이 좌변을 아무것도 둘 수 없다는 약점을 백은 최대한 잘 살려야 합니다. 하지만 b5를 바로 들어가는 것은 흑에게 b3을 내주고, d5 견제가 되지 않아 a5의 기회를 내주기 때문에 좋지 않은 자리입니다. 하지만 백이 f8을 선수로 두고 나면 흑은 e6-f7 돌이 없기 때문에 백의 b5를 b3으로 대응할 수 없게 됩니다. f1으로 버틸 수 있지만, 최선 진행을 따라가보면 결국 백이 b5로 찌르면서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실전에서는 a5로 들어오셨는데, 이는 a3으로 받게 되면 좌변 약점이 전부 사라져 흑에게 더욱 좋은 모양이 됩니다.

 

이렇게 좌변이 정리되면서 판이 많이 기울어졌습니다.

엔딩은 전반적으로 깔끔했지만 h2같은 자리는 들어가면 안됩니다.

4칸 남기고 시간이 3분정도 남아있었는데, 2분 넘게 고민하고 틀렸습니다ㅋㅋ 아직도 엔딩이 부족한가봐요

 

2라운드 vs 소재영 기사님

1라운드부터 협회장님을 박살내셨길래 무서웠는데, 나중에 알았지만 그냥 오늘 협회장님 상태가 안좋았던 것 같습니다. 3패로 시작하실 분이 아닌데,,

페어링되고 5분정도 시간이 남아서 서로 무슨 오프닝할지 벼락치기했습니다. 저는 no-cat이라는 오프닝의 변화도를 열심히 보고 있었는데 재영님이 한 수 먼저 틀어버려서 못써먹었습니다.ㅋㅋㅋ

왼쪽 : wild rabbit 오른쪽 : ganglion / no-cat 오프닝입니다.

둘다 모르는 길로 가는게 목표였기 때문에 초반을 열심히 틀었고 제가 약한 수를 몇개 둬서 -6으로 시작했습니다.

우상귀를 들어갈 수 없고, 현재 백 차례이기 때문에 백이 좌변에서 버텨야 하는 포지션입니다. 둘때는 모르고 뒀지만 다행인 부분은 우상귀가 8칸이라서 패리티를 뺏기지는 않습니다.

여기서 백이 b5 - b3 - a3으로 대응했는데 이렇게 진행하면 흑이 a4로 받을 수가 없습니다. (a4로 받으면 백에게 a6 - a7이 공짜로 생깁니다.) 따라서 a6으로 받거나 혹은 다른 자리로 빠져야 하는데, 흑이 손을 빼면 백이 a7로 버티는 것이 매우 강력해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c2가 +6이고, a6은 0입니다. c2로 최선 진행을 따라가보면 왼쪽과 같은 진행이 나와서 결론적으로 흑이 승리하게 되지만 저 진행까지 전부 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흑이 a6을 선택했고 약간 불리했던 게임이 동등해졌습니다.

 

36수로 g5-c2 교환을 하고 b8을 들어갈지 바로 들어갈지에 대한 고민을 엄청나게 했습니다. 둘을 비교해보면 결론적으로 3번째 사진에서 흑이 b7을 받을 이유가 없고 g6으로 두게 되면 백이 매우 불리해집니다. 하지만 여기까지 보지 못했고 교환 후 g8을 찔렀습니다.

방금 설명한 것처럼 a7을 바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g6을 먼저 둬서 방어했고, 여기서 흑에게 최선 대응은 g7입니다. 하지만 g7 진행을 따라가보면 결국 7번 라인을 백이 끊으면서 대각선과 b열을 전부 뺏기기 때문에 서로 여러운 엔딩이 됩니다. 그래서 흑은 h6으로 대응했습니다.

h6은 c6돌을 뒤집기 때문에 백 a7에 b7이 강제되고 그대로 진행되었습니다.

48수로 g1 대신 e1을 두는건 아무리 돌려봐도 이해가 안됩니다. 흑백 둘다 어려운 모양이고 돌 한두개 차이라 둘다 조금씩 미스가 있었습니다.

흑의 결정적인 패착은 51.h3 입니다. 남은 10수를 다 세기에는 시간이 부족했고 백이 h7로 받으면 이제 g2를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 b2가 묶이기 때문에 절대 쉬운 자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백이 g7 - h2로 받으면서 남은 모든 자리를 백이 둘 수 있게 = 패리티를 백이 챙기게 되었고 패리티의 힘으로 백이 승리하게 됩니다.

 

3라운드 vs 손범근 기사님

지난 8월 대회에서 손범근 기사님에게 쿵 최선수를 갔다가 그대로 -4로 밟힌 경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덜 알려진 길로 가려고 했고 도입부에서 말한 brightwell로 갔는데, 경기중에 물어보니까 이 길도 저보다 더 깊게 알고 계셨더라고요? ㅋㅋ

19수로 g3을 뒀는데, 이후 d6 - c7 - g4로 대응하면 d5~f3라인이 묶여서 흑이 둘 자리가 사라집니다. 이정도는 두기 전에 봐야 하는 모양인데 라인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하는 연습이 필요할 것 같아요.

여튼 백이 20수로 h4로 받아줘서 이번엔 정신차리고 b6으로 제대로 들어갔습니다.

흑은 c6돌때문에 b5로 백이 들어올 수 있는게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해당 자리를 약화시키는 것이 좋은데, 잘못 받았다간 백이 우변으로 손을 뺄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서 들어가야 합니다.

만약 c8이나 e8로 대응하면 백 입장에서는 e6~f5 라인이 사라져서 g4에 대한 부담감이 줄어듭니다. 그래서 좌변을 뚫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습니다.

b4로 뚫게 되면 백은 g4 대응이 불가능해지고 b5는 b3으로 / b3은 b5로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자리가 약화되는 효과를 줄 수 있습니다.

 

31수 h3이 이 판에서 가장 중요한 수입니다. 아까와 다르게 좌변이 거의 정리됐기 때문에 백은 우변이나 하변에서 받아야 하는데, h2로 받으면 이번엔 e5~g3 라인이 살아있기 때문에 두기가 껄끄럽습니다. 그래서 백은 e7로 대응했는데 흑이 h5로 받는 순간 더이상 둘만한 자리가 없게 됩니다.

33수 이후에는 무난하게 백이 패배하는 그림으로 가고 중간에 +42까지 갔지만 몇개 잘못 대응해서 +30으로 마무리했습니다.

 

3라운드까지 3승을 챙기고 점심시간이 되었는데 이 쟁쟁한 라인업에서 3승으로 시작했다는게 굉장히 마음에 들어서 기분 좋게 점심을 먹었습니다.

본도시락 처음 먹어봤는데 맛있더라고요


4라운드 vs 이광욱 기사님

 

오늘 대회의 메인 이벤트입니다. 3라운드 3승이 둘밖에 없었고 이 판을 이기는 사람이 우승할 확률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사실상 우승자를 결정짓는 매치업이였습니다.

3라운드에서 광욱님이 태준님 상대로 평행을 둬서 이기는 기행을 보여주시는 바람에 오프닝 준비는 포기했고, 제가 좋아하는 -4짜리 길인 fuujin을 두려고 마음먹고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광욱님이 저보다 훨씬 많이 틀어버려서 백한테 너무 유리한 오프닝이 되어버렸습니다. 

16수 h6을 두면서 흑이 h5로 들어오는걸 엄청 고민하면서 뒀습니다. 하지만 e7로 받아주셔서 고민없이 바로 h5를 들어갔습니다. h5를 두고 나면 e4~g4라인과 f6~g5라인이 전부 살아있기 때문에 흑이 h4를 들어오는 것이 불가능하고 그러면 받을 수 있는 자리가 e2밖에 없습니다.

d1은 흑이 둘 수 있는 자리를 h4로 강제하는 수입니다.

f6도 마찬가지로 흑이 둘 자리를 f2로 강제합니다.

d8까지 두게 되면 흑은 더이상 둘 수 있는 자리가 없습니다.

경기 둘때도, 복기할때도 못봤는데 30수로는 c4를 둬야 합니다. 여기서 b8을 받은 것이 이 판의 유일한 실수입니다. 

b8-c1 다음에는 더이상 c4를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에 b6이 강제됩니다. 여기서 +20이 넘던 판이 +10까지 줄어들게 됩니다.

이번 대회에서 시간 컨트롤에 신경을 많이 썼기 때문에 36수를 어디로 둘지 한참동안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거의 3분은 쓴 것 같은데 AI를 켜놓고 보면 c4 d2 아무데나 들어가도 되는거 아니야? 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대회에서는 둘 다 흑에게 많은 경우의 수를 주기 때문에 어떤 자리가 더 유리한지 판단하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아무튼 c4로 진행이 되었고 어영부영 중앙이 정리된 다음 흑이 a5로 들어왔을 때 이 판을 이겼다고 확신했습니다. 이 다음으로 둘 수 있는 수는 a5-a7-h7밖에 없는데 h7에 대해서는 이미 확실한 대응이 있었습니다.

오늘 가장 멋있는 수

그건 바로 g2입니다. 참고로 g2말고 h8같은거 뒀다간 또 판이 이상하게 비벼집니다. g2로 받으면 h3에 있는 흰돌이 자체적으로 스토너가 되고, 또 h1로 흑이 들어올 수가 없기 때문에 상변도 위험합니다.

42수 이후 엔딩이 쉽지는 않지만 최선수를 찾지 못해도 백이 무난히 이기는 포지션이고 실제로 한번 잘못 뒀지만 무난하게 끝났습니다.

 

4라운드 후 순위표

4라운드 4승은 저밖에 없었고 협회장님이랑 관윤님 두분이 0승이라 대국을 했다는걸 보고 미친 라인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라인업에서 4연승이라고?

 

5라운드 vs  정태준 기사님

 

태준님하고도 8월에 한번 붙어봤는데, 그때는 비겼습니다. 원래 대각을 두신다고 알고 있었는데 수직으로 받으셔서 3라운드랑 똑같이 brightwell로 시작했습니다.

백 g4가 최선 대응중 하나라는건 알고 있었는데 여기서 흑이 어디로 받아야 되는지를 안보고 시작해서 엄청 큰 마이너스를 밟았습니다. 오늘 둔 7경기 통틀어서 가장 큰 실수입니다. 범근님이랑 할때는 다른 최선길로 가셔서 그 길만 보고 들어왔는데 오프닝 공부가 많이 부족하네요.

하지만 제 컨디션은 오늘 주사위 6이였기 때문에 -12에서 20수를 버티는 기행을 보여줍니다.ㅋㅋㅋㅋ

 

27수와 29수 대응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흑이 끌려다니고 있긴 하지만 최대한 버티기 위해서는 갈 수 있는 자리를 많이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h5는 d1, d7을 모두 가능한 자리로 만들어줌과 동시에 백이 h4로 받기 애매하기 때문에 h6으로 받게 만듭니다. (최선은 c7인데 뜬금없이 갑자기 두기는 어려운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흑이 h4로 들어갈 수 있고, 갑자기 c2~f5가 전부 흑돌이 되어 g6이 잠기고 d6~g3도 다 흑돌이 되어 c7로 잠깁니다. 그래서 백이 둘 수 있는 자리는 a3밖에 안남게 됩니다.

 

 

34수가 이 대국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백이 b2를 두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는 일단 d7을 스스로 못두게 만들기도 하고, 이후 a2 g6 b2로 받으면 b1~d1을 흑이 먹어서 상변 처리가 이상해지고 판이 매우 복잡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b4를 들어오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안들어오셔서 고민없이 바로 흑으로 b4를 박았고 이때 기회가 왔다고 느꼈습니다.

 

사실 흑이 많이 불리했던 판이라 여전히 백이 약간 유리한 상황이지만, 어찌저찌 +0에 가깝게 맞춰졌습니다.

 

여기서 흑이 둘 수 있는 자리가 아주 많아보이지만, 사실은 딱 한자리 뿐입니다.

 

답은 바로 g6입니다. g6은 다음과 같은 기능을 합니다.

- 백이 h3으로 들어올 때 e6~g4가 뒤집혀서 h3이 약화됨

- 백이 a6을 두지 못하게 방해함

- 백이 f7로 받으면 f3이 뒤집혀서 백에게 우변 처리가 어려워짐

실제로 백이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 대응수를 분석해보면 g6이 얼마나 강력한 수인지 느낄 수 있습니다.

g7은 좀ㅋㅋㅋㅋ 저기서 g7을 어떻게 둬

 

이후 진행은 흑이 a1을 언제 먹을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이고, 백이 h7을 들어가는 것을 본 다음 a1을 들어가서 (그러면 h열까지 전부 먹을 수 있기 때문) 이겼습니다.

 

5라운드까지 먹은 돌 개수가 44, 40, 47, 44, 40으로 상당히 많이 먹었고 5라운드 종료 후 4승은 광욱님 한명뿐이였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 제가 우승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광욱님과 대결에서 벌어둔 돌 차이가 있어서 크게 지지만 않는다면 한판쯤 지더라도 돌 개수로 무난히 이길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33~36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이기는 판이 한판도 없이 모든 판을 스무스하게 이겨서 남은 두판을 질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ㅋㅋ

 

6라운드 vs 곽은우 기사님 

분명 2패로 시작한걸 봤는데 매칭됐길래 나머지 세 라운드를 잘뒀나 보다 생각했고 실제로 3연승중이였습니다. 

no-cat을 꼭 두고 싶었는데 드디어 흑이 제가 원하는 라인으로 가줬습니다.

사실 여기까지밖에 몰랐고 그 뒤로는 감으로 뒀습니다.

 

이 판에서 가장 잘뒀다고 생각하는 수는 h4입니다. 수치상으로는 최선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런게 중요한게 아닙니다. h4-g3-h2 교환을 하게 되면 흑은 더이상 c7을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b4를 두기에는 d6이 먹혀서 백이 c7로 받으면 둘 자리가 없고, 흑에게 f7이 생기는 것 같지만 백도 똑같이 f8을 둘 수 있기 때문에 손이 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b3은 백의 다른 라인들을 건드리지 않기 때문에 버텨볼만한 수라고 생각했고 저도 대국중에는 b3이 최선일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b3에서 게임이 터져버렸습니다.

 

수치를 보면 b4빼고 나머지 모든 수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 매우 크게 지는 자리입니다. 이런 함정수를 잘 만드는 것이 실제 대국에서는 매우 중요한 전략입니다. 그리고 h4는 그걸 완벽히 수행하는 수라고 생각합니다.

 

38수로 a7을 뒀는데, 사실 d1 c1을 반드시 먼저 교환했어야 합니다. 대국중에 a7을 별로 고민 없이 빠르게 뒀는데 두자마자 후회했습니다. 근데 지금 보니까 d1말고 c1로 찔렀으면 판이 또 이상해져서 그낭 무난하게 잘 둔것 같기도 하고...?

여튼 교환을 먼저 하고 a7을 들어가면 흑이 둘 수 있는 자리가 아예 없어서 훨씬 쉽게 끝낼 수 있습니다.

라고 생각했는데 g1에 f8로 받으면 갑자기 백이 지는 포지션이 된다고 하네요. 함정이 너무 많다 역시 오델로는 어려워

 

백한테 계속 쉬운 모양이였고 시간을 많이 아껴둔 반면 흑한테는 계속 어려운 모양이여서 43수 시점에는 흑에게 시간이 3분도 남지 않았었습니다. 반면 아까 a7 두고 나서 한참동안 고민했는데도 백은 7~8분 정도가 남아있었습니다. 계속 강조하고 있지만 타임 컨트롤은 중요합니다.

 

43수로 c1은 시간이 많이 있었어도 절대 안둘 것 같고, f8을 두지 않은 이유나 51수로 d1을 둔건 다 시간이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사실 저렇게 크게 차이날 판은 아니였는데 1분 밑으로 남아서 바로바로 둬야 하다 보니 저렇게 되었네요.

 

6라운드 끝나고 스코어보드를 봤는데 제가 둔 사람들이 2등~7등을 하고 있더라고요? 보통 스위스리그에서는 초반에 약한 상대를 만날 확률이 높아서 이렇게 되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엄청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광욱님하고 돌 개수가 42개나 차이나서 6라운드 끝났을 때는 사실상 우승이 확실해져서 7라운드는 마음 편하게 뒀습니다.

 

7라운드 vs 이춘애 기사님

2023년 몽골 아시아대회에서 마지막 라운드로 만났었는데, 그때 컴오쓰로 들어갔다가 33:31로 진땀뺐던 적이 있습니다.

그 전에는 19년 9월에 한번 만난적이 있는데 그때는 쿵으로 두자마자 제일 싫어하는 오프닝이라고 하셨던 기억도 있습니다.

5년 전 대회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일단 초단으로 나와서 7전 전승이라는 무쌍을 찍었던 대회고 하야님이 축하한다고 뒷풀이에서 용돈도 주셨던 기억이 있어서 저 멘트는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ㅎㅎ;;

 

여튼 저는 fuujin을 두고 싶었는데 안받아주셔서 그냥 쿵으로 들어가버렸습니다.

 

12수 g5는 -4인걸 알고 있었지만 대회에서도, 오퀘에서도 제대로 둬본적이 한번도 없어서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 모르는 길이였습니다. 의도하고 둔건 아니고 즐겜모드로 하다가 f2 두는걸 까먹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22수까지는 +0으로 잘 진행됐는데, 24수에서 -6을 한번 밟아서 조금 불리하게 시작했습니다.

 

 

36수 h6을 두면서 저는 h3을 들어오실 거라고 상상도 못했습니다. 수를 못본건 아닌데.. "설마 저기가 최선이겠어?" 라는 생각과 "설마 저기를 들어오시겠어???" 라는 생각이였는데 완전 허를 찔렸습니다.

43수로 g7까지 들어오는 공격이 아주 환상적입니다. g7까지 거의 노타임으로 두셔서 이거까지 보고 두신거냐고 여쭤봤고 그렇다고 하셔서 '이거 완전 일본 월클 고수 기보잖아?'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7경기 통틀어서 독보적으로 가장 멋진 미들게임 진행이라고 생각합니다.

 

a5를 한참동안 고민하고 뒀는데, 다행히 a6으로 받아주셔서 한숨 돌렸습니다. 어차피 엔드게임은 한국에서 제가 제일 잘하고 아무도 따라올 사람 없다고 생각해서 대충 서로 둘 자리가 많으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흑이 a6대신 f7로 받으면 백이 둘 자리가 정말 없어집니다. 물론 쉬운 그렇게 가도 쉬운 엔딩은 아니지만 a6-c7을 교환하면 f7을 둘 때 c4돌 때문에 e6돌이 뒤집혀서 백에게 e7이라는 수가 생깁니다. 그러면 백이 버틸 수 있기 때문에 마지막에 패리티를 백이 챙겨서 h라인을 먹을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a6같은 수는 기피해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 둔 엔드게임 중에 가장 큰 실수가 여기서 나왔습니다.

52수로 b7을 들어가는건 데일리 문제로 나와도 손색없는 고급 수인 것 같아요. 저기를 두는 순간 흑한테 d6돌을 강제로 넘겨줄 수 있고 그러면 대각 라인을 잠궈버릴 수 있습니다. 

시간이 아주 여유없는 상황은 아니였는데 저걸 못본게 너무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e7도 +2긴 했고 e7 - f8 다음에 남은 7칸은 싹다 셀 수 있는 상대적으로 쉬운 모양이여서 f8까지 둔 다음에 '그래도 이기긴 하겠다' 라고 안심하면서 54수 h8을 들어갔습니다.

하야님이 막판에 이상한 수를 하나 두셔서 +10으로 끝났지만 사실은 33:31로 끝났어야 하는 판이고, 미들게임과 엔드게임 둘 다 배울 점이 많은 매우 인상적인 기보였습니다.

 

역시 고점이 매우매우매우매우 높은건 하야님이 아닐까..?

 

대회 후기

맛있는 고기
...와 영수증

 

이번엔 상금이 무려 100만원(!) 이나 걸려 있었기 때문에 부담없이 뒷풀이를 쐈습니다. 그리고 절반이 사라졌습니다ㅋㅋ

 

왼쪽은 대회 전 한국 레이팅 순위(오델로 클럽 기준), 오른쪽은 오늘 참가하신 분들 명단입니다. 이 미친 라인업에서 7판을 다이겼다는게 아직도 믿기지 않네요.

그리고 2등~8등은 순서대로 각각 4, 5, 3, 6, 1, 7, 2 라운드에 저와 상대하신 분들입니다. 이렇게 매칭되는 것도 말도 안되는 확률인데 결과가 이렇게 나와서 신기했습니다. 아무도 부정할 수 없게 싹다 이겨버렸다는 느낌?

 

 

그리고 한국 공식 순위도 2등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대회에 총 6번 나왔는데, 이번에 7판을 다이겨버린 덕분에 참여한 대회 횟수 > 총 패배 수라는 신기한 기록이 생겼네요. 신난당

 

이렇게 폼 좋을 때 세계대회를 나가야 되는데 icpc랑 같은날 하는 바람에 못나가는게 너무 아쉽네요. icpc시치 눈치없게 말이야~

엄청 귀한 선물

그리고 하야님한테 엄청나게 큰 선물을 받았습니다.

19년에 5만원인가 10만원인가 용돈받고 신났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는데

이번에는 무려 인천 대회 참가 선수들 친필 싸인이 담긴 목판...!

상장이고 인증서고 트로피고 다 모르겠고 이 나무판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앞으로도 1년에 한번씩은 이정도 규모로 큰 대회가 열릴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